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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전지출의 용도를 기망한 경우와 사기죄의 성립 여부 - 이른바 용도사기
    판례평석 2016. 9. 22. 16:40

    대상판결 - 대법원 1996. 2. 27. 선고 95도2828 판결


    1. 문제의 제기

    흔히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한 것은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무자가 나중에 돈을 못 갚게 되는 경우 사기죄로 고소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일단 공소가 제기되면 피고인이 차용 당시 충분한 변제자력과 변제의사가 있었다고 하는 변소는,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재판정에서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특히, 사기사건의 경우, 건전한 상식과 거래경험이 있는 자라면 애당초 개입되지도 않을 성질의 사건에 굳이 개입되어 피해를 보는 경우를 수월찮이 접할 수 있고, 그 원인을 파고들어 보면 이는 기망자의 고도의 사술에 기인한다기보다 오히려 피해자의 탐욕과 허영에 기인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정상적인 거래에서는 10%의 마진이 발생하는 것이 정상적인 거래영역에서 기망자가 투자금의 2배 또는 그 이상의 수익을 돌려주겠다면서 유혹하는 경우, 이러한 거래는 그 자체로서 매우 위험한 거래이므로 이러한 거래는 피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굳이 이러한 거래에 관여하고자 하는 자는 이에 대한 대비책을 스스로 강구해야 하고, 거래 결과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여 무작정 기망 당하였다고 하는 주장이 받아들여져서는 아니 된다 할 것이다. 위험을 무릅쓴 결과 큰 수익이 발생한 경우, 그 이익을 취하게 된 당사자가 그 이익을 혼자 취하지 아니하고 상대방에게 나누어 줄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반대로 손실이 발생한 경우에도 그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이를 상대방에게 전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이 경우 손실의 발생은 자신의 탐심이 아니면 허영의 소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본고는 우리 경제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금전차용에 있어서 용도를 허위로 고지하고 돈을 빌린 경우에 사기죄가 성립된다는 판례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2. 대법원 판결의 요지

    사기죄의 실행행위로서의 기망은 반드시 법률행위의 중요 부분에 관한 허위표시임을 요하지 아니하고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하여 행위자가 희망하는 재산적 처분행위를 하도록 하기 위한 판단의 기초가 되는 사실에 관한 것이면 족한 것이므로, 용도를 속이고 돈을 빌린 경우에 있어서 만일 진정한 용도를 고지하였더라면 상대방이 돈을 빌려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에 있는 때에는 사기죄의 실행행위인 기망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대법원 1995. 9. 15. 선고 95도707 판결 등 확립된 판례).

    3. 학설

    이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용도를 속여서 돈을 빌린 경우에 그 진정한 용도를 고지하였더라면 상대방이 대금을 하여 주지 아니하였던 관계에 있는 때에는 사기죄는 성립한다.”고 설명되고 있고(주석 형법 [각칙(6)], 한국사법행정학회(2006. 4.), 52면 ; 박상기, 제8판 형법각론, 박영사(2011. 9.), 305면 ; 김일수․서보학, 제7판 새로 쓴 형법각론, 박영사(2007. 3.), 421면), 이에 대하여 “기망행위가 거래관계에 있어서 신의칙에 반하는 정도에 이를 것을 요하는 것과 같이 단순한 동기의 착오만으로는 착오라고 할 수 없으며, 착오의 대상도 사실에 제한된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판례가 용도를 속이고 돈을 빌린 경우에 진정한 용도를 고지하였더라면 상대방이 빌려 주지 않았을 때에는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한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이재상, 제7판 형법각론, 박영사(2010. 7.), 338면).

    4. 검토의견

    1)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과연 변제기에 이르러 채권원리금을 채무자로부터 변제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이러한 의미에서 채권자는 채무자가 차용금을 어디에 쓸 것인지는 알 필요가 없고 이는 전적으로 채무자의 소관사항이라 할 것이다.

    통상의 금전거래에서 채무자는 돈의 용도를 말하고 돈을 빌리는 것이기는 하나, 아무리 그 용도가 핍절한 것이더라도 그러한 사정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고, 채권자는 돈의 융통에 대한 이자수입을 얻을 수 있고 변제기에 이르러 채무변제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돈이 필요한 상황은 채무자의 사정일 뿐이고, 채권자가 자신에게는 아무 이익이 없음에도 채무자의 사정을 측은히 여겨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이러한 의미에서 차용금의 용도는 금전대여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부대상황에 지나지 아니한다. 채무자가 처한 상황이 딱하고, 채무자가 말하는 돈의 용도가 분명하며, 채무자의 변제계획이 합리적인 자료에 근거한 것이더라도, 채권자는 돈을 빌려줄 것인지의 여부 및 얼마의 돈을 빌려줄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있기 때문에 채무자가 당초 말한 용도와 달리 돈이 소비되어졌다 하여 이를 쉽게 사기죄로 의율할 수 없다 할 것이다.

    애당초 돈을 빌리는 채무자는 돈이 궁한 상태에 있는 자로서, 돈을 빌리는 채무자가 그 돈의 용처를 낱낱이 고해바치지 않았다고 하여 나중에 이를 사기죄로 의율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차용 당시의 용도에 돈을 전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여 사기죄로 의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아니하다. 자금의 용도를 기망한 경우 사기죄가 성립된다는 견해도 자금의 대부분을 본래적 용도에 사용한 경우에는 언제나 사기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금의 반 정도를 사용한 경우에는 어떻게 판단할 것이며, 나아가 1/4, 1/8만을 본래 용도에 사용한 경우에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3) 요컨대, 자금의 용도에 관한 한 채권자는 영향력을 미칠 여지가 없다 할 것이다. 채권자는 돈의 변제가능성에만 주의를 기울이면 족하고, 빌려준 돈을 변제기에 약속대로 다 변제받은 이상 채무자의 지출을 문제 삼을 며리가 없는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소위 용도사기란 것을 인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된다. 용도사기란 기껏해야 채권자가 자신의 판단으로 돈을 빌려주고 나서 채무자가 그 돈을 갚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사후적으로 그 용도를 캐내어 채무자를 사기죄로 옭아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4) 이와 구별되는 경우로, 돈을 맡기면서 용처를 지정하여 쓰도록 하였는데 돈을 맡은 사람이 사적으로 소비한 경우이다. 이처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또는 타인의 물건을 보관하는 자가 그 위임취지에 반하여 돈을 소비하는 경우에는 횡령죄 내지 배임죄가 성립될 수 있고, 이는 위임자의 뜻이 수임자에게 전달되어 수임자는 그 뜻에 따라 행동할 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적인 금전차용의 경우, 일단 금전이 차용자에게 넘어 온 때에는 그 처분권한은 전적으로 차용자에게 있는 것이므로 금전대여자가 그 돈을 어디에 쓰라고 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인정될 수 있다면 그것은 위임관계로 구성되어져야 할 것이다. 차용관계인지 위임관계인지의 구별은 돈의 사용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점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나, 다른 무엇보다, 차용관계의 경우 금전차용자가 받은 돈을 소비한 후 이를 변제하여야 하는 것인 반면, 위임관계는 위임자가 돈의 사용처를 지정하고 수임자는 그 맡은 일 처리에 대한 보수를 받을지언정 위 돈을 사용하고 다시 변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구별될 수 있다.

    5) 다만, 금전차용의 경우에도 특수한 경제적 약자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성 자금 대출의 경우, 자금대출자가 용도를 기망하고 정책자금을 받아 타에 소비한 경우 이를 사기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예컨대, 어느 중소기업이 국가 또는 정책금융기관으로부터 중소기업 공장의 설립 또는 원자재 수입을 위한 정책자금을 받아, 본래 대출용도와는 달리 비업무용 토지 매입 등 부동산투기의 목적으로 이를 소비한 경우와 같다. 생각건대, 이러한 경우에도 금전차용자의 변제의사와 변제능력이 인정되는 이상, 자금소비의 용도를 거짓 고지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사기죄로 의율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금전차용자의 변제가 이루어지는 이상 금전대여자에게 손해발생이 없기 때문이고, 금전을 빌린 자는 이를 어느 용도로 사용할 것인가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5. 결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기죄만큼 일반인의 법의식에 가까운 범죄를 찾아보기 어렵다 할 것이나, 그 외연의 한계설정이 반드시 명백한 것은 아니고, 인간군상의 다양한 욕구와 생활패턴에 따라 사회가 복잡하게 변동하는 것만큼이나 기망행위 역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사기죄의 본질적인 속성은 타인을 기망하여 처분행위를 하게 한다는 점에 있으므로, 거래상 상호 대립관계에 서지 않을 수 없는 일방 당사자에게 과연 어느 경우에 기망행위가 있었다고 평가할 것인가 하는 것은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재화의 거래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매도인은 비싸게 팔려고 하고 매수인은 싸게 사려고 할 것인데, 과연 매도인은 어느 정도까지 정보를 공개해야 하며 나아가 매수인을 보호할 의무까지 있는가 하는 점이 문제될 수 있다(대법원 2010. 2. 25. 선고 2009다86000 판결 및 채권양도를 승낙한 채무자가 양수인에게 채권의 성립에 영향을 주는 사정에 관하여 고지할 신의칙상 주의의무가 있는지에 관한 대법원 2015. 12. 24. 선고 2014다49241 판결 참조). 이를테면, 시장가격이 객관적으로 분명하지 않거나 다소 투기적 성격이 있는 미술품, 비상장주식 등이 거래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피해자가 “그러한 사정을 몰랐다.”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피해자가 보호받아야 한다고 할 수 없고, 자유의사와 판단능력을 가진 인격자로서 먼저 각자 스스로 정보를 취합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며 그 책임 역시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결정에 따른 이익을 본인이 얻는 것이므로, 반대로 손해가 발생한 때에도 그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할 뿐 거래상대방과 분담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기책임의 원칙은 사기죄의 성립범위를 제한하는 원칙으로 작용하여야 한다.

    특히 당사자가 높은 수익을 추구하여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위험한 거래에 나아간 경우이거나, 그가 거래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이해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과 거래경험을 갖고 있는 경우로서 거래상대방보다 우월하거나 적어도 대등한 지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때에는 쉽게 사기죄의 성립을 긍정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published in 2016. 6. 서울지방변호사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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