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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명국가의 형사절차를 위협하는 무른 땅에 말뚝박기 -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재판장 황병하 부장판사)에 바란다
    사법제도 비판 2014. 2. 3. 18:41

    우리 헌법상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적법절차의 원리 및 각종 형사소송법상 피고인 보호를 위한 법원칙들은 실제 법적용을 담당하는 기관의 기본권에 대한 이해도, 존중의 정도에 따라 그 구현의 편차가 크다. 비록 우리 헌법이 절대권력에 항거한 시민혁명을 통하여 권리장전의 형태로 제정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절대주의 왕권에 대항하여 국민의 신체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하고 평등한 법집행을 확보하기 위한 시민혁명의 정신은 비단 서양문명국가에 국한된 것이라 할 수 없고, 이는 지나간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끊임없이 직면하는 문제로서 인간사회에서 분쟁이 끊어지지 않는 한 계속적으로 추구해 가야 하는 보편적 가치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형사절차에서 피고인 보호를 위한 각종 법원칙들은, 막강한 정보력과 강제력을 가진 국가권력에 견주어보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미약한 존재인 개개의 피고인에게 최소한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공개된 재판절차를 통하여 그의 유·무죄를 가릴 수 있게 하되 그 진위여부의 판단을 오로지 이성과 논리, 경험칙에 맡김으로써 형사재판절차의 존엄성을 지켜나가도록 한 것이며, 이 때 피고인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강제당하지 않으며 나아가 공소사실의 증명책임을 검사에게 지움으로써 몰아세우기식 자백강요로부터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나아가 자칫 자의와 남용에 치우칠 수 있는 국가형벌권 행사에 이성과 자제력을 불어넣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형사소송법」상 명문규정상 또는 해석상 인정되고 있는 전문법칙, 자백배제법칙,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등과 같은 증거법칙, 적법절차의 보장과 법 아래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피고인에게 적대적인 증인의 강제적 소환이 보장되며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권이 보장되는 재판을 받을 권리에서부터,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보장되고 있는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에 이르기까지 이들 법원칙과 권리는 현대 문명사법절차에서 어느 것 하나 경시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갖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재판에서 이들 원칙이 무시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예컨대, 본인이 최근 변호한 한 사건에서는, 마수없이 “그럼 피고인은 피해자들에게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겁니까, 뭡니까?”라는 재판장의 마뜩찮은 일성으로 시작된 사건이 사안의 실체와는 관련도 없는 재판장의 일장훈시로 이어진 예가 있다. 즉 민사와 형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사기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회복을 하지 않으면 불리한 재판이 나올 수밖에 없고, 사건의 성질상 부러지거나 무죄가 나오거나 둘 중의 하나인데, 나중에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이 나게 되면 그 때는 돌이킬 수 없으니 알아서 처신하라는 것이었다. 이미 재판부는 단단히 잡도리를 하고 있었다.

    위 사건은 1심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된 것으로, 항소심 첫 기일에 검사와 변호인은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진술하였으나, 재판부의 기록검토를 위해 한 기일이 속행되었고, 속행 첫 기일에 제1심에서 증언한 바 있는 증인(고소인)을 다시 소환하기로 했으며, 제1심에서와 거의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는 수준(항소심 증언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 없음)의 증인신문이 마쳐졌다. 위 증인신문을 마치고 피고인 측에서 공소의 전제가 된 공사대금 채권의 대물변제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다른 증인(다른 공사업자)을 신청하려고 했으나, 재판부는 대물변제가 있었는지 여부는 재판부가 판단하면 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기각했고, 변호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인신청의 필요성에 대하여 말을 이어가자 재판부는 이미 ‘이유를 들어 기각’했으니 최종변론을 하고 아니면 재판을 마치겠다고 - as if he were to remind me, presumably, his creed that a judge's decision whether to accept or refuse the defendant's motion is not only dispositive but also impeccable - 이죽거리듯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피고인 측 주장은 아예 고려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이후 변호인의 변론재개신청은 속절없이 기각되었다. 이는 개구리 낯짝에 물 붓기요, 천이 천 소리 만이 만 소릴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측 증인만 다시 불러 증언을 들은 다음 곧바로 결심했고, 관련소송에서 피해자 자신의 대물변제 받았다는 진술, 제3채무자인 시행사 대표의 증언, 같은 처지에 있던 공사업자들의 진술을 일거에 물리치고 1심 판결을 취소하고 피고인을 징역 3년의 실형에 처하는 사자후를 토하였다. 위 사건의 핵심적 내용은 피고인이 고소인들로부터 유치권부 공사대금채권을 양수받을 당시, 고소인들이 공사대금채권을 가지고 있었느냐에 있었고, 고소인들은 관련 사해행위취소소송에서 고소인들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공사대금 대신 받은 대물변제이므로 사해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제3채무자인 시행사 대표가 위 소유권이전등기는 공사대금의 대물변제조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증언한 것이었다. 이 정도면 피고인의 주장이 증거가치 면에서 우월하게 입증되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proved by a preponderance of the evidence). 그러나 위 재판부는 대물변제로 보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를 들어 위 진술, 분양계약서, 정산합의서, 등기부등본의 기재의 증거가치를 모두 배척하였다.

    본래 형사재판에서 범죄 구성요건은 증거의 우월한 증명으로는 부족하고, 합리적 의심을 넘는 정도(beyond a reasonable doubt)로 증명되어야 하고(물론 이러한 원칙은 사실인정과 판단이 전적으로 직업법관에게 달려 있는 우리 재판제도에서는 그 구별의 의미가 크지 아니한 것이다.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강의실에서 뿐만 아니라 법정에서도 실제로 적용되고, 피고인의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될 때에만 충분히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증명책임은 공소를 제기하는 검사에게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범죄구성요건이 존재한다고 추정함으로써 피고인에게 위 증명책임을 전가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은 문명국가 형사절차 내지 적법절차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의 하나이다(Mullaney v. Wilbur, 421 U. S. 684 (1975)). 위 재판부는 이러한 무죄추정의 원칙, 적법절차 원칙, 법 아래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로부터 절연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They're entirely and successfully insulated from constitutional guarantee that protects defendant against every conceivable abuse of discretion or arbitrary exercise of power.). 과연 이러한 재판을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공정함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과연 이러한 재판을 정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일 대물변제가 아니라면, 대물변제를 주장하는 피고인의 주장이 법리상 어떠한 이유로 잘못이라는 이유를 들어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제시하지 아니하고, 단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대물변제가 아니라고 판시하는 것은 이성과 논리에 기초한 판단이라 할 수 없고 피고인으로서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재판부는 피고인을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대기업 총수도 아니고,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도 아닌 일개 잡범에 불과한 피고인을 구속하지 않은 이유는, 법률상 다투어질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툼의 여지가 있다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항소를 기각하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는 in dubio pro reo 원칙이 아니라, prove innocence all by yourself 또는 save yourself if you can 원칙이 적용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위 사건을 진행하면서 망령처럼 떠나지 않는 생각은,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만일 국민 10명이 지켜보았더라도 재판을 이렇게 진행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높은 법대에 앉아 세상을 굽어보면서 눈 밑에 보이는 것들을 내심 멸시할 수는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형사재판의 문명적 가치는 결코 경시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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