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주요민사판례 초판 머리말
    저술 2017. 6. 29. 15:58

    민사실체법상의 권리의무는 민사소송절차에 의해 종국판결로써 그 구체적인 존부 내지 범위가 정해지고, 그 임의의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그 판결의 집행은 민사집행절차에 의존하게 된다. 요컨대 민사소송절차는 실체법상의 권리의무가 응축된 집행권원을 얻기 위한 절차이고, 민사집행절차는 집행권원을 기초로 채무자의 재산을 강제로 매각하거나 그 의사의 진술을 강제하는 절차라 할 수 있다.

    민사소송절차는 크게 사실확정의 다툼과 법리적용의 다툼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확정이란 과거의 사실을 당사자의 기억과 각종 계약서, 확인서 및 증인의 증언 등의 형태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사실관계를 올바르게 정리하는 것은 민사소송절차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사실관계가 먼저 정립된 후에야 비로소 정당한 법령의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가 헌법상 보장되지 않고 있는 우리 민사소송절차에서는 사실관계의 확정은 법관의 심증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법관의 심증은 거짓 진술을 걸러내고 진실한 진술만을 정제하는 필터와도 같은 것으로, 재판의 적정성 여부는 종국적으로는 당해 사건을 심리하는 법관의 양식, 양심 및 인격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109조는 재판공개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하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재판 공개의 범위는 각국의 사법역사와 전통에 따라 그 범위가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재판현실은 재판공개의 원칙에 충실한가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재판을 공개하는 것은 사법의 진실성과 공정성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암막이 쳐진 밀실에서 누구에 의해서 결정되었는지 알 수도 없는 그런 재판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당사자가 될 수 있고 그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개개 사건의 판결을 공개하고, 심리에 관여한 법관의 이름을 적은 판결서를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그 판단의 정당성을 국민의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 되게 한 것이며, 이러한 검증작용을 통하여 오판을 예방․시정하고, 그 결과 사법작용의 정당성이 다른 상급 행정권력이 아닌 국민에 복종하고 국민의 지지에 기반을 두게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법은 시민혁명에 의하여 사법권의 독립을 성취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역사는 독재정권의 억압적인 권력행사와 흉악한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사법부이고, 이러한 사법권의 독립은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재판을 할 경우) 법관 개인 심지어 가족들에게 가해질 수도 있는 불이익과 보복을 무릅쓰지 않으면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각주:1]


    이는 불과 3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요컨대, 우리 헌법이 공개재판의 원칙을 헌법에 규정한 것은 부패한 또는 권력 편향적인 법관의 자의적인 재판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이는 개개 법관의 의지와 희생 없이는 지켜질 수 없는 숭고한 것이다.

    이해관계의 대립이 첨예한 영역일수록, 그리고 사회가 복잡하게 세분화될수록 어떤 판단이 내려지더라도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양한 가치추구가 허용되는 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그 판단이 상식에 기초하고 문명국가의 법원칙에 맞는 재판의 결과 얻어진 결론이기 때문이다. 즉 그 판단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대립되는 주장이 충분히 펼쳐지고, 그 반대주장에 따를 수 없는 충분한 이유가 설명된 경우에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 제시는 판단의 근거가 된 논리과정을 공개함으로써 판단의 정당성이 재음미 될 수 있도록 한 것인 동시에 그 판단의 근거가 된 사회현상이나 법원칙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게 된 때에는 종래의 판단이 변경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판결서를 보아도 그러한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의 이유 제시가 없거나, 당사자 간에 적극적으로 다투어진 쟁점의 판단을 유탈한 재판은 필연적으로 항소․상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재판이 두 번 세 번으로 늘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각주:2]


    생각건대 공개된 법정은 권리자와 의무자가 변론을 통하여 권리와 의무의 범위를 확정하는 경연장으로서 충분히 기능해야 할 것이다. 공개된 법정에서 자유로운 변론에 의해 주장의 진위가 가려지고, 재판의 흐름과 방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손해배상 사건의 경우, 그 구체적인 액수는 예상할 수 없을지라도 누구의 과실이 더 크게 평가되는지, 가해행위와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 존부 등은 변론을 통하여 예측이 가능해야 할 것이고, 이러한 예측 가능한 재판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재판을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송무 현실은 (의도하지 않게(inadvertently) 법관의 생각이 드러나는 말이 새어나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법관의 심증개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그 결과 판결 선고가 이루어질 때까지 전혀 그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관의 심증을 개시하면 자칫 편파적인 재판진행으로 오해받을 수 있고, 법관의 생각을 알려주면 마치 시험에서 답을 알려주는 결과가 되는 것이라고 하거나, 또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로 재판부의 사정상 기록검토를 그때그때 하지 못한 데 기인할 수도 있다. 기술과 문명의 발전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편저자조차 쉽게 접근이 가능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경우, 구두변론의 음성파일과 녹취록이 즉시 공개되고 있다. 편저자가 접한 몇 안 되는 사건의 경우만 보더라도, 미국 대법관들은 자신의 이해상태와 질문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심증 현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즉 대법관이 이해하기로는 원고 또는 피고 대리인의 주장은 이러이러한 것으로 요약되는데 이것이 맞는지 먼저 확인하고, 그 기반 위에서 질문과 논리적합성 여부를 논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변론과정을 공개하고 있으므로, 각 대법관의 사건에 대한 이해도, 질문의 적절성, 말하는 속도와 억양, 즐겨 쓰는 어휘, 때로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는 그러나 비하하지 않는 질문과 재담(belligerent questioning or frivolous quips in a tongue-in-cheek manner)과 대리인의 더욱 재치 있는 답변, 방청석에서 일제히 터지는 웃음소리까지 그대로 공개되는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국민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소통하고 있고 대화의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표하고 있으며,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판단을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동시에 예측 가능한 재판을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하여 판결문 작성에 기울인 대법관의 헌신과 노력에 국민들은 내면으로부터 우러나는 깊은 감동과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각주:3]


    물론 우리 대법원도 최근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는 재판을 방송을 통하여 공개하고 있기는 하나, 대법원의 많은 사건이 아무런 예고 없이 심리불속행으로 종결되는 현실에서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심리불속행 통계는 법원이 매년 발간하는 사법연감에는 통계로써 발표되고 있지도 아니하다. 다만, 최근에 이르러서야 “대법원 홈페이지> 대국민서비스> 정보> 사법통계> 법원통계월보”란에서 인터넷 상으로 공표되고 있을 뿐이다. 이에 의하면, 2012년 민사 본안 사건의 경우 (상고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아 상고가 기각된 것을 제외한) 상고기각건수를 보면, 심리기각이 3,806건에 심리불속행기각이 5,792건이며, 이를 다시 소가를 기준으로 1심 소액, 단독, 합의로 나누어 보면 각 1,451건에 61건, 836건에 3,555건, 1,519건에 2,176건이며, 상고기각건수 대비 비율은 각 4.03%(1,512건 중 61건), 80.96%(4,391건 중 3,555건), 58.89%(3,695건 중 2,176건)이며,[각주:4] 이중 소액사건을 제외한 비율은 70.88%(8,086건 중 5,731건)이다.[각주:5] 이러한 통계는 대체적으로 대법원에서 상고인이 대화의 상대방으로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 사법부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도대체 지구상의 어떤 문명국가가 상고심을 이렇게 운영하고 있는가?


    또한 사법부의 고질적인, 이제는 신물이 나고 지긋지긋한 전관예우가 뿌리 뽑히지 못하고 것은,[각주:6] 본질적으로 특혜를 바라는 특권층이 있기 때문이고, 이에 영합하여 이익을 취하는 변호사가 있기 때문이며, 은밀한 거래가 통하는 법관과 검사가 있기 때문이다.[각주:7] 이렇게 취한 이득은 당장에는 유익한 듯하지만, 결국 우리 사회 전체를 멍들게 하고 관련 당사자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매우 중대한 범죄행위이며, 우리 사회를 혼탁하게 하고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며 간교한 술책을 쓰는 자만이 세력을 얻게 되는 사회로 변모시킨다. 전관예우의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그리고 엄격하게 다루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법치국가 질서 하에서 법률해석의 문제는 매우 전문적인 영역에 속하고, 일반인의 시각에서 법원재판의 적정성을 논하기는 어려운 분야이다. 일반인은 법제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함으로써 원망 섞인 비판에 치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제도가 일반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므로 일반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운용되어야 하는 것은 민주국가의 당연한 요청이다.[각주:8] 


    법원의 재판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상고심의 판단을 받는 기회를 좁힘으로써가 아니라, 당사자의 주장을 경청하여 진위를 가려내고, 그 바탕 위에서 합리적인 해석을 함으로써 당사자를 설득하는 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법치국가에서 오판시정의 길은 오로지 상급법원에의 상소 외에는 없고, 대법원은 대한민국의 최고 법원이기 때문이다. 2011년 처리된 민사 본안사건의 경우, 상고기각 비율은 90.4%(총 10,783건 중 9,749건)에 이르고, 2012년의 경우, 상고기각 비율은 89.5%(총 11,581건 중 10,376건)에 이른다. 이러한 통계만 놓고 보면 우리의 사법은 매우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으며, 그야말로 아무런 이유가 없는 상고가 남발되고 있을 뿐이므로 상고를 획기적으로 제약하여 상고심을 더욱 법률심으로 순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으나, 그 상고기각의 약 70%가 심리 없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그렇게 볼 수 없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대법원이 현재의 불속행원에서 파기원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비유컨대 만일 대법원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 “독일에서는 이미 콩으로 메주를 쑤지 않음이 학설 판례상으로 인정되고 있고, 이러한 대법원의 해석은 정당하다.”고 하는 사람들(이러한 사람들은 대법원이 콩을 팥이라 해도 그 해석이 옳다고 할 사람들이다.말만 듣지 말고, 정말 대한민국에서 살아가야 하는 선량한 국민들 및 우리 후손들을 위해 우리 사법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를 깊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Otherwise it would be an affront to the Constitution's guarantee of Judicial Independence, 

    and would chip away at the dignity of our justice system, and eventually subvert the rule of law.


    1. 신평, 사법의 독립을 누릴 자격, 대한변협신문 [2012. 11. 5. 제421호], 신평 교수는 ‘사법의 독립은, 사법구성원에게 특혜를 주려는 원칙이 아니므로,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정한 재판제도를 확립 운영하는 사법의 책임을 다 할 때’ 비로소 그 독립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본문으로]
    2. 불행하게 한 재판장을 만나는 경우, 증거신청은 모조리 기각이고, 항소심 첫 변론기일에 결심하고 재판이 종결되는 경우도 있다. 말 붙일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는 기다려 볼 필요도 없이 1심 판결을 인용한 항소기각. [본문으로]
    3.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우리나라의 판결과 같이 간략한 것이 아니고, 그 하나하나가 우리의 전원합의체 판결 중 가장 분량이 많은 것의 몇 배에 상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그 판단의 깊이와 분량은 그 제약된 시간에서 어떻게 그런 업무를 감당해 내는지 일반인들은 놀라울(mind-boggling) 정도의 것이다. [본문으로]
    4. 특이한 것은 소액사건의 경우, 심리불속행 비율이 4%에 불과한 반면, 합의사건은 58.89%에 이른다는 점이다. 우리 대법원은 특히 소액사건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소액사건의 경우 심리를 더 철저히 하는 것일까.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본문으로]
    5. 물론 여기서 심리불속행으로 집계된 것은 형식상 심리불속행으로 끝난 사건만을 말한다. 사건의 실체에 대하여는 아무런 판단도 없는 사실상의 상고기각판결은 심리기각판결로 집계되는 것이다. [본문으로]
    6.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소속회원 총 9,680(2013. 6. 5. 현재 개업회원)명을 대상으로 전관예우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761명 중 90.7%가 존재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전관예우 근절방안 모색을 위한 심포지엄, 2013. 6. 11. [본문으로]
    7. 민경한, 전관예우의 온상이 된 대형로펌, 대한변협신문 [2011. 11. 28. 제376호], 민경한 변호사는 ‘천문학적 급여를 주고 갓 퇴직한 최고위직 공직자를 채용하여 전관예우를 이용하거나, 사건유치 수사 재판 자문업무의 로비스토로 활용하지 말고, 떳떳하고 공정하게 오직 법과 정의에 입각한 로펌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다. [본문으로]
    8. 이상열, 우리나라의 대법원 과연 존재이유가 있는가?, 대한변협신문 [2012. 7. 23. 제408호], 이상열 변호사는 상고심 심리불속행판결을 받아 본 사람의 허탈과 분노, ‘대법원에 의해 자행되는 사법정의의 말살과 임무해태’를 개탄하고 있다. [본문으로]
Designed by Tistory.